<공모> HEAL더WORLD 힐링콘텐츠 창작공모

김기연
2019.04.16
제목 : 힘내줘! 나의 청춘

힐링콘텐츠 창작캠프때 경청과 치유-나의 자서전 글쓰기를 참여했었습니다.
캠프 이후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자서전의 형식으로 글로 남겨봤습니다.
하나씩 글로 풀어가며 치유받고 새롭게 꿈을 그려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가 쓴 이 글들로 인해 누구나 쉽게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고,
자서전 쓰기를 통해 힐링 일어나는 경험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공모전에 제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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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줘, 나의 청춘!
나의 인생 이야기
김기연


힘내줘,나의 청춘! – 나의 인생 이야기

발행일 2019년 04월 14일
지은이 김기연

본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
으셔야 합니다.




목차

#01 청춘 시대
#02 전성기
#03 앞날








#01 청춘 시대
어떤 전공을 선택하셨나요? 선택한 이유와 함께 알려 주세요.

나는 줄곧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학창시절을 왕따로 힘들었기 때문에 꼭 선생님이 되어 우리
반에 나와 같은 왕따는 없도록 해주고 싶었다.
너무 오랜 시간 꿈을 꾸었기 때문에 다른 진로는 생각해보지
못했을 정도로 너무나 명확하게 사범대에 진학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재수와 삼수 끝에 내가 그토록 원하던 교육학과에 입
학할 수 있었다.
사실 국어교육과를 지망하던 내가 교육학과는 살짝 낮춰 차선
책으로 들어간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참 잘한 선택인 거
같다.
교육학의 전반에 대해 먼저 배우고 그 다음 국어교육에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을 꼽으라면 아마도 이 선택이 탑
5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대학 생활을 위해, 도시로 유학을 떠나 집에서 독립하셨나요?
어땠나요?
나의 대학생활은 부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다행히도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여서 집과 학교를 통학버스와
시외버스로 비교적 편하게 다녔다.
하지만, 힘들게 들어간 사범대였음에도 내가 선택한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 캠퍼스의 낭만은 주로 다른 학교들에서 보냈
다.

내가 원하는 과에는 진학해서 교수님과의 관계와 수업시간은
너무나 행복했지만, 대학생활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
다. 자꾸 밖을 돌았고, 대외활동과 연합동아리 등을 하면서
캠퍼스 낭만을 채워 나갔다.

삼수 끝에 힘들게 시작된 대학생활이었기에 하고 싶었던 것들
은 다 해봤던 것 같다.
1학년 1학기 때 중간고사를 치르자마자 바로 ktx를 타고 서울
로 성시경 콘서트를 보러 간 적도 있었고,
천문동아리를 들어서 별 관측을 떠나 마음껏 밤하늘을 관찰했
다.

장거리 연애도 해보았고, 그 학교 학생이 아니었음에도
존경했던 교수님의 강의를 도강하는 것도 많이 했다.
비록 진도를 따라잡지 못해도 원하는 공부를 마음껏 누려본다
는 것은 대학생활의 낭만을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햇살이 좋은 날은 벤치에 누워 낮잠을 청해보기도 했고, 학교
연못 앞에 앉아 멍 때려보는 것도 즐거웠다.
가슴이 뛰고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 많은 고민하지 않고 바로
질러 나갔던 대학생활이었다.


대학 생활의 낭만으로 기억되는 일은 무엇인가요?

'대학생활의 낭만'이라고 하면 나는 꼭 경북대에서의 추억
이 떠오른다.
스물한 살 무렵. 그때 나는 우연히 경북대생을 사귀어 뜨
거운 연애를 하고 있었다. 풋풋하고.. 서툴지만.. 가볍지 않
은. 그때 한참 토이 노래에 꽂혀있어서 언제나 ' 여전히 아름
다운지' 이 노래를 귀에 꽂고 다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이 노래는 경북대 캠퍼스의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적응해서 분주하게 대학생활하
고 있을 4월은.. 특히 많이 생각난다.
본관 앞 일천 담도 생각나고.. 사범대 앞 벤치도 생각나고..
공대 앞 지도 연못도 생각나고, 수의대 앞 텔레토비 동산도
생각나고.. 무엇보다 법대와 사범대 사이에 있는 러브로드가
참 많이 생각난다.
거기서 자주 걷곤 했었는데.. 고백 ... 받은 날 제일 크고 잘
생긴 나무에 '내 나무'라며 이름 지은 곳이기도 하고.. 그 나
무를 자세히 보니 낙서로 새겨져 있어서 그 뒤로 많은 이야기
를 함께 붙여 나갔었는데...

수업 끝나기를 기다리며 걸었던 플라타너스 나무 길도.. 특
히 밤에 혼자 걷고 있으면 적당히 불어오는 바람과 젊음이 넘
실거리고 있는 공기가 너무 좋았다.
그러다 일청담에서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 잔이란.. 술 마시
고 물에 빠지는 얘들도 너무 웃겼고, 빠뜨리려고 하다가 같이
옷에 적시는 모습도 싱그러웠다.

나에겐.. 첫사랑이었나 보다.

이렇게 몸이 기억하는 걸 보니. 애써 기억해내지 않아도.. 우
연히 토이 노래를 듣는데 음악 한 곡으로 이 모든 걸 끌어낼
수 있는 걸 보니.. 농대 앞 농장도.. 당시 새로 지었던 어학
원도.. 기숙사도.. 인문대 앞 큰 건물 짓는다며 시위하던 현
수막도 모든 게 펼쳐질 듯한데.. 그때 그 친구와 헤어지고..
또 같은 학교 수의대생을 사귀었던 곳.

그래서 사계절 내내 추억이 있는 곳.

2008년에서 2009년으로 가는 시간에도 함께 했던 그 캠퍼스
가.. 너무 그립다.
누군가가 첫사랑 얘기, 두 번째 사랑 얘기해달라고 하면 이
두 사람 이야기를 해주어야지

나에겐 낭만이었고, 나에겐 푸르름이었다.

스무 살 후반부터 스물둘의 한여름까지 정말 자주 갔던 곳.
대학생활의 낭만을 충족시켜 주었던 곳.
많은 강의와 강연을 들으면서 나의 생각이 자라기 시작했던
소중한 추억이다.


대학 생활을 하며 나의 생각을 바꾼 사건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학 4학년 때 학교에서 김수영이라는 작가의 강연을 봤던
경험이 기억에 남는다.
책에서만 읽었던 저자를 내 눈으로 직접 본다는 것이 신기했고,
꿈 리스트를 정해서 이루어 가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고 감동했었다. 너무 가슴이 뛰어서 강연 끝나고 사인회
할 때 맨 끝 줄에 남아 기다리면서 "밥 사주세요!"하고 당돌
하게 말했다. 그 후 교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고 그녀를 더욱
가까이에서 보게 되었을 때의 감동이란.. 같이 강연 듣고 친
해졌던 분들이 '리틀 김수영'이라는 별명도 지어줬다.

그때부터 김수영을 롤모델로 삼고 '닮고 싶다'라는 소망을
가졌다. 그날 하루로만 본 게 아쉬워 좀 더 오래 보며 이야기
듣기 위해 그녀의 직장이 있는 런던 행 티켓을 무작정 끊었다.
그리곤 런던 가서 뵙고 싶다고 블로그 쪽지를 보냈다.
안타깝게도 아부다비에 일정이 있어서 안될 거 같다는 답장
이 왔지만 런던 행 티켓을 왕복으로 끊은 터라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혼자 하고 돌아왔다.

그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했던 혼자 가는 배낭여행.

그 후.. 하루하루 용기 내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나의 꿈은 무엇이었나요? 나를 설레게 한 일에 대해 적어 보세요.

내 꿈은 선생님과, 라디오방송작가, 깊은 산속에 한옥 게스트하우스
열기 등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언제나 설레게 하는 꿈은 있다.

바로 '핀란드로 다시 여행 가기'이다.
대학 4학년 때 무작정 지른 배낭여행에서 한 달의 일정으로
마지막 10일을 핀란드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실 너무 지쳤었다.
홀로 20일 동안을 여행하느라 너무 힘들었고, 매일매일 일어
나는 돌발 상황에 늘 긴장해 있어야 했고,
많이 걸어 다녀서 발에 굳은살이 박여 찢어져서 걸을 때마다
많이 아팠고
수많은 돌길을 지나는 동안 캐리어 바퀴 한쪽이 깨져서 울퉁
불퉁한 20kg 가방을 끄는데도 너무나.. 힘들었다.
게다가 배낭 무게 10kg+크로스백 7kg.. 나중에는
다 벗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무거웠다.

하지만 ..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힘들었던 핀란드에서의 10일이 참 행복했던 거 같다.
돌발 상황이 생겨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혼자
있어도 그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늘 길을 몰라서, 혼자 있으면 불안해서 찾았던 동행자도 찾으
려 하지 않았고 아무 길에서나 있어도 그저 홀로 유유히 걷고 있으면
그저 편안했다.
공원이 있고, 잔디밭이 있는 곳이라면 누워서 하늘 바라보고
있을 때면 한없이 맑은 여름 하늘에
온몸을 맡겨서 햇볕을 쬐었고 그것이 평화라고 느끼고 낮잠도
즐기곤 했다.
여행 중반부터 계속 몸이 늘어지려고만 해서 경계를 하고 다
녔는데 여행 후반부인 핀란드에서는
굳이 경계하려 하지 않아도 알아서 몸이 늘어지는 걸 멈출 수
없어 내버려 두었는데
그냥 그 자체로 좋았다.
내 정신뿐만 아니라 몸도 자유롭고 싶었나 보다.

정말.. 핀란드에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일도.. 앞으로 돌아가서 겪게 될 나의 일도.

지금은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지만,
언제나 그때가 그리울 정도로.. 자유로웠고 너무나 평화로웠
다.
다녀와서는 언제든 다시 갈 수 있을 줄 만 알았다. 그런데 이
제는 그게 '꿈'이 될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가슴 뛰는 일이
있다는 건 늘 나를 행복하게 한다.
후에 미래 일기로도 썼는데 이 책에 담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첨부한다.

그렇게 여름, 꼭 이맘때 다시 오겠다 했던 나와의 약속을
지켰다. 생각보다 빨리 지켜져서 기쁘다. 경비는 나도 모르게
어디선가 생겨서 공짜로 왔다. 1달 동안의 여행자금으로 쓰는
데 부족함이 없는 돈이다. 이 돈이 어디서 와서 나에게 왔는
지 그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한 달 내내 다른 나
라를 가지 않고 핀란드라는 한나라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
다.
지금 나는 헬싱키 반타공항을 막 빠져나와, 615번 공항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시원한 고속도로.. 자작나무
가 가득한 풍경..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핀란드어.. 모든 게
그대로다. 나. 정말 핀란드에 도착한 게 맞구나.

4시에 중앙역 도착하면 본격적으로 나의 여행 일정이 시작
된다. 제일 먼저 그리워하던 탐페레에 살고 있는 나의 핀란드
인 친구 1호 니키타를 만난다. 지난 여행 때 만났던 친구인
데.. 줄곧 페이스북을 통해 채팅으로 대화하다가 직접 얼굴을
다시 보며 얘기할 걸 생각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난다. 이런저
런 감성에 젖다 보니 어느덧 도착해 20kg 무거운 캐리어 가방
을 내리고 만나기로 했던 장소에 도착했다. 가방은 잠시 차에
맡기고 역 근처 맥도널드에서 간단하게 빅맥으로 먹기로 한다.
난 이 햄버거가 너무 그리웠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먹을 수
있지만 이곳에서 먹는 것만으로 충분히 특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만큼 난 이 나라가 좋다.

처음엔 교육제도가 좋아서 호기심을 갖게 된 나라였다. 하
지만 점점 공부해보고 역사를 알게 되고 복지제도, 사람들의
의식, 문화를 이해하니까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었다. 결정
적으로는 역시 2년 전 여행이 가장 컸다. 직접 내 두 발로
처음 내디뎠을 때, 그리고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핀란드어를 들
었을 때 그때 그 감동을 잊지 못한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
는..'끌림'이 다시 이곳에 계속 오고 싶게 만들었다.
버벅대는 나의 영어 솜씨로 그때나 지금이나 제대로 의사소통
이 잘 안되지만, 나의 눈으로 웃음 지으며 얼굴 마주 보며 바
디랭귀지 하는 것으로 그간의 안부 물으며 회포를 풀기 시작
한다.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이 친구의 고향 탐페레 근교 도시
로 향한다. 헬싱키에서 기차로 1시간 반, 차로 2시간 걸리는
곳이다. 차 안에서도 우리의 대화는 이어진다. 난 영어가 잘
안돼서 아 모르겠다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한다. 그래도 웃음
이 끊이질 않는 거 보면 많이 반갑고 좋긴 좋은가 보다. 며칠
간 이 친구 집에서 묵고 비행기를 타고 산타마을로 유명한 로
바니에미를 갈 생각이다. 늘 환상에만 있던 산타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생각에 벌써 들떴다. 이제 실감이 난다.

나는 지금 핀란드에 있다.
여행 중 생생하게 담긴 내 사진도 함께-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나요?

작게 작게 내가 그리던 선생님이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고
는 있지만, 그래도 가슴 한편에 둔 아쉬움은 있다.
바로 교단에 서는 선생님이었다.

그것도 시골 학교 선생님.
학창시절 인간극장 등의 다큐 등을 보며 막연히 시골학교 선
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길러보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한 반에 20명으로 오밀조밀 수업하고 시골 학교답게 방과 후
에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자연에서 '시 짓기', '시화 그리기'
등 좀 더 시 수업을 다양하고 여유롭게 하고 싶었다. 학생 수
가 작은 만큼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일 수도
있고, 가정방문을 통해 아이들을 이해하고 싶었다.
꼭 20대 때 혈기 왕성할 때 해보고 싶은 꿈이었는데.. 가보지
못해서 아쉽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줄 아는 일 중 나의 선택과 결과를 알려
주세요.

서른셋이 되면서 정말 많이 고민 한 주제였다.
하고 싶은 일과할 줄 아는 일중에 나는 여태껏 하고 싶은 일
만 하고 살았다.
그러다 보니, 결과는 없고 과정만 흐지부지한 채로 살고 있는
걸 발견하고 이건 뭔가 아니다 싶었다.

30대가 되고 난 이후의 시간은 생각보다 정말 정말 빠르게
흐른다.
언제까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결과 없이 있는 건 낭비라는
깨달음이 오더라.
그러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사회에서 이미 자리 잡기 시작한 친구들이 하나 둘씩 눈에 들
어오더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꿈에서 확 깬 느낌이었다.
나는 여태껏 뭐하고 살았나.. 너무 방황을 많이 하며 홀로 동
굴 속에 갇혀 지냈던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몰려들었다.
하고 싶은 일들, 여행과 자아탐색과 치유 등은 할 만큼 다 하
고 살았으니.. 이젠 정말 돈을 벌어 독립을 해야 했다.

언제까지 부모님의 등에 기대어 살수 없다는 것도 한 살을
더 먹고 얻은 깨달음이다.

다행히도 나는 하고 싶은 일과할 줄 아는 일의 접점을 찾아
달려가고 있다.
그게 꿈과도 연결이 되니 이 얼마나 대단한 축복인가.
진작 열심히 할걸.. 하는 후회만 들 뿐이다.

다음에도 이 선택의 기로에 선다면 나는 할 줄 아는 것에 설
것이다.


내 인생의 전환점은 언제였나요?

내 인생의 전환점은 2019년 요즘인 거 같다.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직업을 갖는 일들에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현장에서 직접 뛰어들고자 하지 않았고, 사회에 내딛는 게 무
척이나 두려웠기 때문에 갖은 핑계를 대면서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내 꿈을 이루는 것을 미루고 싶지 않다. 계속
움츠리고 있다 보면 이대로 멈춰 있을 것만 같아서.. 계속해
서 용기를 내는 중이다.

2019년 3월 현재, 평생교육센터에서 초등학교 저학년의 아이
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기억의 책 작가에 지원서류도 제출해두었고.. 그렇게 선생님
과 작가라는 두 가지 꿈에 한 발을 내디딘 느낌이다. 이 자서
전을 쓰고 있는 지금도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함으로 쓴다.

작게는 작게 천천히 step by step을 하며 내 꿈들에 발걸음을
옮기는 중.
2019년의 나를 응원한다~!!


나에게 청춘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나에게 청춘이란, '힘내줘 나의 청춘'인 거 같다.
내 자서전의 제목이기도 한 이 글이.. 나의 청춘이라는 의미
에도 꼭 맞는 거 같다.
이렇게 마음껏 열정을 쏟고, 실컷 아파도 했다가, 또다시
으쌰으쌰 일어서기도 하고, 우하하하~행복해하기도 했다가, 또
다시 우울의 극에 달리기도 하고, 내 스스로의 위로와 친구들
의 위로를 받고..
사람에, 사랑에, 또 일에.. 최~~~선을 다하고..
깨질 땐 마음이 찢~~어질듯 아파하고.. 찌질함의 극치로 내달
렸다가.. 자책도 했다가..
호되게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따끔하게 충고를 받기도 했다가..
그렇게 최선을 다하고 나면 또 괜찮아지는 게 '나'더라.
미련이 남지 않게 스스로에게 할 만큼 했으니 또 홀가분해지
더라.

나의 에너지와 열정으로..
청춘을 살고 있다.
건강한 청춘을 앓고 있다.
그래서 .. 찌질하지만 빛나 보여.

나의 그런 빛이 좋다.

느낄 수 있는 감정들을 다 느끼고 있어서.. 정말로 좋다.
이렇게 살아있어 주렴!

이 모든 시간들을 만끽하고 살수 있으려면 '힘내줘 나의 청춘'!!


하루하루를 열정적으로 보내는 나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요?

요즘의 너는 참 바쁘게 산다.
그건 아마 이제라도 시간에 쫓겨서, 시간의 소중함을 알게 되
었기 때문이겠지?
서른셋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꿈에 대한 도전을 시작하며,
그래도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는 거 참 잘
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하고 있는 너에게 무한한 응원과 박
수를 보낸다.
분명 빛나.
원래 빛나는 사람이었는데 그동안 기나긴 방황이 너의 빛을
가려서 안 보였을 뿐이지.
그저.. 지금처럼만. 초심을 잃지 않고 계속 정진하며 도전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낯설고 무섭다고 피하지 말고.. 도망치고 피하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잃어갔으니까.
적절하게 체력 분배 잘해서 계속해 나갔으면 해.

너에게 당부할 말은
서른셋에 맞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나이에 책임을 할 수 있는.. 그리고 다양한 도전으로 내
세계를 확장해나가며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길 바란다.
나를 중심에 두고 스스로를 먼저 챙기는 사람이 되길.
용기 내야 할 순간에 좀 더 용기를 내어
너의 세계를 확장하길.
많은 모험을 통해 너를 실험해보길 간절히 바란다.

건투를 빈다 ~!


인생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나의 인생 책은 하야마 아마리의 '스물아홉 생일 1년후 죽기
로 결심했다'이다.

왜 이 책이 내 인생 책이 되었냐면, 내가 스물아홉 때 서른이
되기 너무 겁내서 방황을 할 때, 내 나이로 된 제목이 눈에
띄었고 베스트셀러였고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
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며 밑줄 그었던 부분을 옮긴다.

줄곧 패배자로 살아오던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도전자가 되
었다. 그리고 나와는 아무 상관없었던 라스베이거스를 인생의
마지막 도달점으로 삼았다. 생각 속에 어떤 씨앗이 있었기에
이런 변화가 생겼을까? 목표가 생기자 계획이 만들어지고, 계
획을 현실화시키려다 보니 전에 없던 용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략)
정말이지 인생의 구석구석에서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
무도 모른다. 아무리 무모하더라도 일단 작정을 하고 나면 무
슨 일이든 생길 수 있다. 정말 신기한 것은 내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원래의 나라면 좁은 방바닥에 드러누워 꼼짝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저 머릿속에서만 수십 채의 집을 짓고
허물며 게으른 몽상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 나였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고 몽상은 그저 몽상일 뿐이었는데, 그런
내가 최초로 몸을 움직였다. 발가락부터 조금씩 움직여 본 것
이다. 그러자 기적 같은 이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나
는 다시 불을 켜고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앞으로 1년 뒤, 인
생의 정점까지 가는 동안 나의 신조처럼 지키고 싶은 한마디
를 적었다.

'기적을 바란다면 발가락부터 움직여 보자.' 61~62p

하지만 치카는 그렇지 않다. 늘 활기차고 에너지 넘치는 그녀
의 힘은 연극이라는 인생의 목적과 호스티스라는 수단을 동시
에 추구하는 데에서 나오고 있다. 바닷가의 아름다운 음악 카
페를 꿈꾸는 레이나의 힘 역시 마찬가지다. '자기 무대'를 가
진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지속적인 당당함, 그런 것들이 나에
게는 없다. 외톨이는 사람들로부터 소외됐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무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외톨이인 것이다. 라스베
이거스에 가겠다는 집념은 변함 없지만, 솔직히 그들이 너무 부럽다.
사람들은 긴 학창시절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수없이
시험을 치르고 성적으로 올리고 많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사회에
나와 직장을 구하고 열심히 일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고생도
대부분 인생의 수단을 갖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 '그 다음'은
가르쳐 주지 않고, 또 그럴 수도 없다. 그것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찾지 못했다. 만일 텔레비전 화면에서 라스베이
거스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그나마 지금 같은 시간도 갖지 못
했을 것이다.

두려움이란 건 어쩌면 투명한 막에 가려진 일상인지도 모른다.
그 투명 막을 뚫고 들어가기 전까지는 미치도록 무섭지만, 정
작 그 안으로 들어가면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은 또 하나의 평
범한 세계가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몸을 싫어하는데 누군들 좋아해 줄까? 하지만 '
통통하긴 해도 그런대로 봐줄 만 한 걸?' 하는 마음으로 자기
몸을 대하면 변화가 생긴다. 아닌 게 아니라 거울 앞에서 내
몸을 자주 들여다볼수록 마담이나 동료들한테서 '요즘 보기
좋네? 몸에 신경 좀 쓰나 봐?'하는 소릴 심심찮게 듣게 되었다.

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싶을 만큼 삶에 대한 의욕이 없었다.
그러다 라스베이거스라는 시한부 목표가 생겼고, 오로지 그
목표만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는 동
안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살이 빠지고 '예쁘다'라는 소리도
듣게 되었으며, 일과 돈에 대한 집착과 더불어 가까운 동료들
까지 생겼다. 모두가 스스로 정해 버린 시한부 목표가 있었기
에 가능한 것들이었다.

"뭐든 그렇겠지만 일류니 고급이니 하는 말은 늘 조심해야 해.
본질을 꿰뚫기가 어려워지거든. 출세니 성공이니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자기만의 잣대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 세상은 온
통 허울 좋은 포장지로 덮여 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볼 수 있
는 자기만의 눈과 잣대만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타인의 평
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고 비로소 '자기 인생'을 살 수 있
을 거야. 그게 살아가는 즐거움 아닐까?"

'살아가는 즐거움이라…….'
타인의 평가와 세간의 잣대와는 아무런 상관없는 자기만의 삶
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지금까지 서른을 코앞에 둔 대부분의 여자들은 결혼과
함께 안정된 생활만을 바라고 있을 거라 생각해 왔었다. 그래
서 안정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나 같은 사람은 세상에 뒤처져
있는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세상이 뭐라 하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 있
는 것이다.

"너희들 몇 살이라고 했지? 스물아홉? 서른? 요즘 여자애들은
서른만 넘으면 나이 들었다고 한숨을 푹푹 쉰다며? 웃기지 말
라고 해. 인생은 더럽게 길어. 꽤 살았구나, 해도 아직 한참
남은 게 인생이야. 이 일 저 일 다 해보고 남편 자식 다 떠나
보낸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할 만큼 길지. 100미터 경주인 줄
알고 전력 질주하다 보면 큰코다쳐. 아직 달려야 할 거리가
무지무지하게 많이 남았는데, 시작부터 힘 다 쏟으면 어쩔 거
야? 내가 너희들한테 딱 한마디만 해줄게. 60 넘어서도 자기
를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게 뭔지 잘 찾아봐. 그것 지금부터
슬슬 준비하란 말이야. 내가 왜 이 나이 먹고서도 매일 술을
마시는지 알아? 빈 잔이 너무 허전해서 그래. 빈 잔에 술 말
고 다른 재미를 담을 수 있다면 왜 구태여 이 쓴 걸 마시겠어?"
"맘. 그런 재미를 어디서 어떻게 찾아야 할 지 알 수만 있다
면 얼마나 좋겠어요?"
"닥치는 대로 부딪쳐 봐. 무서워서, 안 해본 일이라서 망설
이게 되는 그런 일일수록 내가 찾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평생의 꿈을 가로막는 건 시련이 아니라 안정인 것 같아. 현
재의 안정적인 생활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그저 그런 삶으로
끝나겠지. 1

옷만 제대로 입어 줘도 마음의 자세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그 분명한 진실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사막 한복판의 인공 오아시스 주변에는 열대의 나무와
아름다운 구조물들이 나란히 하늘을 향하고, 수면은 새파란 하늘빛
으로 찰랑찰랑 빛나고 있었다. 나는 선글라스를 쓰고 비치체어에
드러누워 칵테일과 샌드위치를 주문했다. 주변에는 이런
호화판에 아주 익숙해 보이는 부류의 사람들이 연인끼리,
혹은 가족끼리 와서 한껏 즐기고 있었다.
'저들 눈에도 내가 자신들과 같은 부류처럼 보일까?
내가 이 짧은 순간를 위해 1년 동안 칙칙한 3평짜리 원룸에서 살면서
하루 20시간 넘게 일했다는 사실을 짐작이나 할까?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해지면서 약간 쾌감이 일었다.
최고급 룸에 머물며 카지노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거금을 날리는
사람들에게 150만 엔이라는 나의 전 재산 따위는 돈도 아닐 테지.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다.
돈이 많건 적건 간에 이 순간의 행복이 중요할 뿐이다.
더구나 지금 내가 누리는 사치는
죽을힘을 다해 발버둥친 대가로 얻은 것이 아닌가?
호스티스로 일하면서 호화로운 레스토랑이나 부자들이 노는
곳에 따라가 본 적은 있지만, 이만큼 만족스러웠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고생해서 얻은 만큼 나는 지금 최고의 시간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라스베이거스의 햇볕 아래서 유유
자적 헤엄을 치거나 파라솔 아래 드러누워 잠을 자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서서히 저물어 가는 해를 바라보며 칵테일을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키가 큰 백인 남자였다.
"어디서 오셨나요?"
롯폰기의 클럽에서도 몇 번인가 작업을 걸어오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꿈에 그리던 리조트의 상큼한
푸른 하늘 아래, 맷 딜런을 닮은 꽃미남 외국인이 말을 걸어
오고 있지 않은가!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서툰 영어로 대답했다.
"일본이요. 당신은?"
"와! 일본? 저는 뉴욕에서 왔어요. 가족과 함께인가요?"
"아뇨, 친구요."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주위는 온통 커플과 친구, 가족뿐
이다. 여자 혼자 여행 왔다고 하면 괜히 이상한 생각을 품을
지도 모른다.
"그래요? 저도 친구랑 왔는데, 그 친구는 지금 카지노에 있어
요. 친구 녀석은 이렇게 가슴이 확 트이는 수영장을 놔두고
완전히 카지노에만 빠져 있답니다. 그런데 혹시 학생이세요?"
역시 동양인은 어려 보이는 모양이다. 내일이면 서른이 되는
나를 학생으로 보다니, 나는 그냥 "예스"라고 대답했다.
"저는 로브라고 합니다. 변호사죠."
얼핏 장난기가 많아 보였지만, 얘기를 나눠 보니 똑똑하고 신
사적인 데다 아주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로브는 "혹시 괜찮다
면……"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오늘 저녁 함께 하는 거 어때요?"
세상에 이런 횡재가! 20대의 마지막 밤을 이렇게 멋진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니.
나는 속내를 감추고 여유롭게 "그렇게 하죠"라고 대답했다.

식사가 끝나자 로브는 "바에서 한잔 더 할까요?" 하며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사실 라스베이거스의 야경이 보이는 호텔
바에 구미가 당기긴 했다. 만일 이런 일이 어제 생겼더라면
난 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밤, 나에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정말 미안해요, 전 이제 가봐야 해요."
나는 정중하게, 그러나 단호히 거절했다.
나의 스물아홉도 이제 몇 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리기 전에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로브는 깨나 아쉬
워했고 나 역시 미련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연락
처도 교환하지 않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서른 살이 되는 내일……어쩌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
르니까.
예정대로라면 나는 지금 통에 든 알약을 모조리 입 안으로
털어 넣어야 한다. 그럴 각오로 오늘 이 순간까지 내처 달려
온 것이다. '기꺼이 죽겠다'라는 각오가 없었으면, 나는 지난
1년 중 단 하루도 온전히 살아 내지 못했을 것이다. 계획했던
모든 일들을 완수했고, 목표했던 결승선까지 완주한 지금, 나
에겐 최후의 선택만이 남았다.

내가 알던 그녀는 어제 죽었다. 이로써 나는 '또 다른 오늘'
을 얻었고, 인생의 연장전을 이어가게 되었다.
서른 살 첫날, 내가 받은 선물은 '생명'이었다. 227p

해보기 전엔 절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
은 뭐든 지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230p

1년 동안 나를 목표 지점까지 갈 수 있게 해준 모든 수단들과
작별한 뒤, 나는 다시 벌거벗은 기분으로 세상 앞에 섰다. 아
직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길이 아주 많다는 것이다.
231p

매일매일 디데이를 향해 카운트다운을 가동했다. 그리고 그
마법은 통했다. 이제 나는 마법을 믿는다.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
작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그 사실을 알기 전까지
나는 '끝'을 의식하지 못했고, 그래서 시간을 헛되이 흘려 보
내기만 했었다. 아무런 비전도 없이 노력은커녕 비관만 하며
그저 되는대로 살았었다. 하지만 D365, D364, D363……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서부터 나는 치열하게 내달릴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난폭한 방식의 자기개혁이었지만, 말 그대
로 죽을힘을 다했기 때문에 라스베이거스 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막의 환타지 공간에서 보냈던 20대의
마지막 6일이 나를 바꿔 버렸다.
나는 단 6일을 위해 1년을 살았고, 삶을 끝내기 위해 6일을
불태웠다. 그 끄트머리에서 '20대의 나'는 죽고 30대의 내가
다시 살아났다. 이제부터 맞이하게 될 수많은 '오늘들'은 나
에게 늘 선물과도 같을 것이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내일'이
란 말을 쓰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은 천금 같은 오
늘의 연속일 테니까. 234p

오랜 시간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있다가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려 읽게 되었다.
요즘 내 상황이 많이 안좋아서 인지, 이런 자극적인 제목에
눈이 간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책이라든지, '스물아
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처럼.
사실 읽기 전에 제목만 보고는 그래서 주인공이 죽었을까?
안죽었을까?만 관심이 갔다.
그래서 빌리자마자 책 끝부분부터 읽고 싶은 욕망이 잠시 일
었다. 하지만 그건 재미가 없을 거 같아서 꾹 참고 처음부터
읽어나갔다.

오랜만에 읽는 책인데도 수필이라 그런지 술술 잘 읽힌다.
주인공이 내 상황과 비슷해서 감정이입 하면서 읽혔기 때문이
기도 하고 문체가 쉬웠다. 중간중간 많은 부분을 밑줄 그어야
했고 멈추기도 해야 했지만, 이상하게 읽는 내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던
'김수영'씨였다.


대학교 3학년 당시 베스트 셀러였던 그녀의 책을 읽고,
이듬해 김수영씨를 학교강연 장에서 만났다. 그 후 밥 사달라고
당돌하게 말하며 해운대에서 식사도 함께하고 사진도 찍고,
작년에 새로 출간된 책을 읽고 또 다시 강연 장에서 만났다.
강연 장에서 듣기만 하던 내가, 강연 장에서 내 꿈 발표까지
했던 나. 그녀는 언제나 나의 멘토였다. 아니, 단순히 멘토를
넘어, 되고 싶은 선망의 대상이였다. 같이 강연 듣고 친해졌
던 분들이 '리틀 김수영'이라는 별명도 지어줬다. 그 별명이
싫지 않아서 계속 PR하고 다녔고, 김수영씨의 어린 시절,
성향, 성격이 비슷해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예상치 못하게 방황하고 있다. 그 방황은 '내
가 뭘 해야 할 지 방향을 잡지 못해서'였다. 김수영을 만나기
전까지,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홀로 유럽배낭여행을 떠나
기 전까지의 나의 꿈은 분명.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그
것도 '아이들 편에 서는 선생님'. 나의 꿈에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25년 동안 살았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나는 선생님이 되고 싶고 또 되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완전히 바껴버렸다. 더 대단한 사람을 만나고, 넓은 세계를
마주하면서 부터.

그때부터 나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황을 했다. 마치,
'언제 네가 선생님이라는 꿈을 꿨었냐?' 하는 기세로. 모조리
지워져 버렸다. 내가 하고 싶은 거. 잘하고 싶은 거.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뭔지, 싹둑 잘라져 버렸다.
그 모조리 지워져 버린 자리에, '나'라는 사람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보는 '나'에서 내가 보는 '나'로 완전히 관점이 바
뀌었다. 늘 사람들이 평가에 의해 알고, 사람들의 말에 의해
아는 내가 아닌, 내가 생각하고 사고하고 판단해보려고 하는
움직임이 생긴 것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어쩌면, 지금 내가 이렇게 모든 일에 서
툴고 못났고 실수투성이인게 정상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태
껏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가 겨
우 배낭여행을 떠나고서야 쌓아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어쩌
면 그래서 요즘 이 자극적인 제목의 책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일게다. 책의 내용처럼 '안정과는 도무지 거리가 먼 나 같
은 사람은 세상에 뒤처져 있는 거라고 굳건히 믿고 있었기 때
문'이었다.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찾아가는 사람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이제 한걸음씩 나아가는 나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
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다 보면 너의 길을 분명 만날 수 있을
거야.' 하고..

그래서 나에게 이 책은 내가 방황하던 시기에 절묘한 타이밍에
저자가 나에게 속삭이는 화이팅으로 느껴졌다.
'내가 너와 같은 불안함, 그 속에서 걸어와 봤는데 이러저러
한 목표설정을 하고 경험하니까 이렇더라.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거 같았다. 책을 다 읽고 덮으니 '김
수영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구나' 라는걸 깨달
았다. 이 말은 즉 슨, '이렇게 단기목표만 잡고 나아가도 잘
살 수 있구나'의 의미로 다가왔다. 나는 단기 목표만 잡고
있을 때 늘 불안했다. 전체적인 청사진이 있고 밑그림이 있어야
나아갈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마치 '나는 선생님이 될 거야!' 하는 것처럼.

하지만..현재의 나는 그런 것 따윈 없다. 그저.. 내 머릿속
엔 단기간에 끝낼 수 있는 거. 당장 열심히 해서 결과가 보이
는 것들 인 거 같다.

이제는 단기목표만 잡고 가도 될 것 같다. 안정을 추구하기
보다, 나의 길을 나아가도 될 것 같다. 그 과정 속에서 또 다
른 일들이 펼쳐질 테니까.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다는 것은 아
니다. 내 마음의 나침반. 평소 내가 해보고 싶었고 가슴 뛰는
일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 나갈 것이다.



#2전성기
평범했지만 잊을 수 없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우리 가족은 위기에 강하다.

늘 각자의 생활에 충실하다가, 집에 일이 생기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해준다.
그러곤, 빨리 회복한다. 나는.. 그런 점이 참 좋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문제 해결에 도와서..
가끔.. 나는 이 사람들이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
다. 으으.. 생각만 해도 아찔하고 싫다.
내가 좋은 사람일수 있는 이유는, 나를 만든 우리 가족이 좋
은 사람이어서다. 그 무엇도 아닌 단단한 가족으로 엮인 인
연이라 그저 감사하다.

사실 어릴 때. 아빠가 날 미워한다고 생각해서 멀리 출장만
다닌다 생각했고,
오빠랑 클 때 투닥투닥 싸워서 난 항상 불행하다 생각하며 컸
는데.. 20살 이후로.. 나도, 가족들도 노력해서일까? 점차 오
해도 풀고 사이 좋은 오누이. 그리고 여전히 나에겐 잔소리
많은 부모님이지만 이렇게 사이 좋게 계셔주셔서.. 얼마나 다
행인지.

가을동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은서네처럼 그런 멋진 오빠와
멋진 가정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사소한 것부터 노력하고 시간이 지나 어느 가정보다 화목해졌
다. 사소한 것에서 행복이 뭔지, 늘 반복되는 일상을 조금만
낯설게 보니까 따뜻함이 뭔지 느껴진다.
그저 나의 가족이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내 곁에 있어준. 그리고 그런 엄마. 아빠. 오빠와 새 언니가
내 가족 일수 있어.. 과분하고, 또 감사하고.. 그래서 나도
이제 조금씩 보답하는 딸이자 동생이고 싶다.
이런 따뜻한 단어를 쓸 수 있음에..

사랑합니다. 우리 가족.


존재만으로 내게 위로가 되는 사람과 그 이유에 대해 적어 보세요.

나에게 존재 그 자체만으로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있다.
나의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신 '곽옥련 선생님'.
어린 나이여서 아무 생각이 없을 때였는데..
시 쓰기로 반 대표 뽑아주셔서 교내 대회에 나가 상도 타고
인디언 식 이름 짓기라는 것을 통해
'글과 시의 조화'라는 내 이름을 지었을 때 칭찬을 아낌없이
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데..
글쓰기로 칭찬받으니 참 좋아했었다. 그 칭찬 하나가 언젠가
글 쓰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고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열린 교육 시범학교여서 시험에 해방되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활동하게 해주시기도 했다.
이때의 기억이 오래 남아 나도 학급 운영을 한다면 그렇게 해야지.
하는 꿈도 품게 되었고..
나의 선생님이라는 꿈의 롤모델이 바로 곽옥련 선생님이다.
만약 만나지 못했더라면.. 이렇게 반듯하게 성장하지 못했을 거다.
한창 방황하며 쓴 글을 첨부하며 .. 선생님과의 추억을 추억한다

교사라는 것은.. 미성숙한 아이들을 기르는 직업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다. 나 자신조차도 제대로 서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 채로.. 아이들 앞에서 가르치는 일을 한다는
자체가 어느 순간부터 무서워졌다. 어쩌면 이 핑계를 대고
피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 나 자신을 보듬어주고,
성숙되고, 사랑해줄 수 있을 때, 그때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마음을 갖고 있고,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어서 좋은
교사가 될 가능성 또한 많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스
스로 좀 더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을 때, 그때. 아이들을 만나
야 덜 후회될 거 같다. 나의 시행착오를 내가 아닌, 아이들
을 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야 훗날 내가 만날
아이들에게 떳떳해질 수 있을 거 같다.

지금이라도 교사가 되는 걸 멈출 수 있어 다행이다.

선생님. 간밤에 진로에 대해 복잡한 고민이 들어서 쓴 글이에요.
저는 당분간 교사 됨을 멈춰있을 생각입니다. 제가 아직 너무나
부족하고, 감히 나의 시행착오를 아이들로 통해하고 싶지 않아서요.
대신 다양한 사회경험을 쌓기 위해 취업할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어쩌면.. 합리화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도피.. 일지도 모르겠
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직업'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교사는 올바른 시민으로
길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 배웠습니다. 저부터 바로 서고,
사랑하고, 단단해졌을 때, 그때 아이들 앞에 서겠습니다.
가르치는 일을 제일 잘하고, 품을만한 가슴이 더욱 넓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교사가 되기 위해, 저는 잠시
돌아가겠습니다. 선생님, 응원해주세요.
곽옥련 담임선생님께 이런 응원 부탁 글도 적었었다.

나는.. 선생님의 발톱의 때만큼이라도 닮아갈 수 있을까.
참.. 넓고 깊군요. 단순히 선생님께서는 선생님이 아니셨나
봅니다. 항상.. 늘 그립습니다. 참 사랑을 보여주신 곽옥련선
생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내게 가장 큰 도움을 준 인맥은 누구였나요?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나는 아직도 제주의 우도에서의 시간을 잊지 못한다.
내가 갔을 때는 초여름으로 향하고 있는 2017년 6월 중순이었
는데.. 현실이 너무너무 갑갑해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었다.
뭘 해야 할지 아직도 헤매고 있는 여자 서른하나 백수..
시간은 많고.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랐다.
인생에 어디쯤 달려가고 있는지 너무 궁금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달려가다가 멈춰서 이정표를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하기 위해 잠시 멈춘 곳이 바로 제주도였다.
'제주도에는 산도 있고 바다도 있으니까.. 어디든 많이 걷고
오면.. 좀 이정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흔히 인생을 길에 비유하곤 하니까.. 똑같이 길을 걷고 싶었
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제주를 여행할 때 렌터카를 대여해서
가고 싶은 곳은 편하게 어디든 가는데..
나는 내 두 발로 뚜벅이로 가보고 싶었다. 버스의 도움은 좀 받았지만.
처음에는 3박 4일을 계획한 여행이었다.
그냥.. 막연히 걷는 여행이니까 그쯤 되면 체력이 떨어질 거라 생각했어서였다.
그래서 딱 3박 4일 여행 경비만 갖고 떠났다.
그렇게 시작된 제주도 여행.
처음엔 내가 생각한 대로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사려니 숲길도 걷고, 장생이 숲길도 걷고.. 올레길도 걷고 걷
다가 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하염없이 멍 때려서 보곤 했다.
내가 계획한 시간들을 다 보내고 있을 즈음.. 자꾸.. 제주가
좋아지는 게 아닌가.

'아니,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단순히 관광이 아니라, 여행으로 오니까 그저 평화로웠다.
누구에게도, 어느 것에도 방해 받지 않는.. 온전히 '나'를 위
해 허락된 시간.
스마트폰 연락에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돌리면 어디든 있는 자
연이 너무 좋았다.
돌아가는 티켓을 취소하고 미루고.. 취소하고 미루고를 반복
하다가..
이대로 가면 너무 후회할 것 같아서 섬 속의 섬. '우도'에서
여행을 마무리하면 참 좋겠다 싶었다.

배를 타고..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
그전에 검색으로 노닐다 게스트하우스에 예약을 해뒀던 터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여느 게스트하우스처럼 친절한 설명을 듣고 숙소에 짐을 풀
고.. 우도에서 지금 가장 하면 좋을 것들을 소개해 달라고
해서 게스트하우스 직원 분의 추천으로 가장 먼저 한 것은
해질 녘 노을을 바라보기. 곧바로 자전거를 대여해서 지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 갔다.

익히 말로만 듣던 서빈 백사장에서 해를 바라보는데.. 너무 평화로웠다.
그저 멍 때리기도 했고 촉감이 너무 좋아서 맨발로 거닐기도 했다.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고 있는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다.

다음 날 아침.

조식을 먹는데 깜짝 놀랐다.
메뉴가 다양해서 일단 한번 놀랐고, 이게 내가 묵고 있는 숙소비
25000원에 포함되어 있는 음식이라서 놀랐다.
쨈과 사과, 그리고 직접 구운 머핀과 원두커피까지..
정말 다양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어 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만찬이었다.
구성 하나하나에 대해 알고 싶어서 물어보니 모두 유기농으로
만들었다 한다.
유기농 쨈, 유정란으로 만든 머핀, 사과는 한살림을 통해
샀다고 하고 원두커피도 공정무역을 통해 들여온 원두로 직접
볶아 내린다고 한다.

'이 게스트하우스는 특별한 게 있구나.'

좀 더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어 음식 얘기를 하다가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어서 한때 국어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교사를 꿈꿨던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했다.
본인은 전직 국어교사로 있다가 그만두고, 제주에서 내려와
농사짓고 산다고 소개해주셨다.
어떻게 제주도에 오게 됐냐고 물었을 때, 내가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다가 인생의 이정표를 찾고 싶어서 왔다고
솔직하게 얘기했다. 제주의 자연을 보면서 길을 걷다 보면 혹시..
찾게 되지 않을까 하고 왔다고. 그러자 자신의 국어교사로
지내왔던 경험과, 어떤 보람이 있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어떤 삶은 지금은 계획하고 있는지 진솔한 대화가 오
갔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나와 같이 제주도에서 농사짓지 않을래요? 당근 농사도 있고
땅콩 농사도 있어요.
정말 돌아가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농사짓고 밭 일구는
것도 좋아요. 언제든지 생각나면 연락 주세요."

순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누군가가 저에게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 라고 말을 들었던 게
처음이어서 일게다.
그리고 정말로 제주도에 내려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함께
농사를 지으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말이..
나에게는 정말 필요했던 말이었다.

'같이 해보자.'

이 대화가 오간 후 우도의 올레길을 천천히 걸으면서.. 스스
로에게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진정으로 묻고, 답했다. 지금은
뚜벅뚜벅 내 길을 가고 있다.

그래서 힘들 때나 행복할 때면 제주도 우도의 시간이 많이
떠오른다.
만약 우도에서의 시간을 홀로 갖지 않았더라면, 그 길을 걷지
않았더라면 계속 모르고 살았을 거야..
아니, 뒤늦게 알았다고 해도 용기를 내지 못 했을 거다.
선망하던 전직 국어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셨기에 더 신뢰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직접 게스트하우스 앞에 있는 직접 일구신 밭을 직접
봤으니까
얼마나 풀벌레가 많은지 봤으니까 알 수 있었다.
그 당시에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던 채소들.. 그 기름진 땅 그
분이 키우는 농작물을 안 봐도 얼마나 정성 들여서 조심스럽
게 키우는지 짐작이 됐다.

뭔가를 할 때 내 뒤에는 "같이 농사짓자~!" 하는 분이 있으니
까 참 든든한 빽을 가졌다.

저와 이야기 나누었던 선생님~!
그때 그 말을 해 주셔서.. 저는 두고두고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을
만난 것 같아요.
연락처도 모르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제가 아는 것이라고는
우도의 노닐다 게스트하우스의 주인의 지인이라는 것 밖에
는 없지만 그 말 덕분에 좀 더 제 인생에 용기를 내게 됐어요.
뭘 해야 할지 몰라하며 막막해 할 때 조언을 주시고.. 정말로
할 일이 없을 때 함께 농사를 짓는 것도 몸은 고되고 힘들지
라도 마음은 편안하고 즐겁고 보람 될 것 같거든요. 제가
짓는 농산물 하나하나에 정성과 마음, 그리고 행복을 담았으니
드시는 분들도 행복해 지지 않을까요?
다들 그렇게 농사를 짓는 건 가 봐요.
그리고 언젠가 정말로.. 제가 제주도로 돌아가서 농사를 짓게
될 날을 꿈꿔요. 우리 그때.. 행복하게 일구어 나가요. 정말
고맙고, 사랑합니다.
언제 어디에 있든, 제게 주신 조언과 나눔.. 그 귀한 마음..
베풀며 살겠습니다.
막막해하고 있는 저와 같은 청년들이 있으면 기꺼이 손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꿈꾸던 일을 다시 시작했다면, 그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느 순간부터
아무리 친한 친구들을 만나도..
아무리 좋은 공연을 봐도..
아무리 혼자 여행을 가도..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가슴속 어딘가 꽉 막혀있는 기분.
답답하니까 내 안에 있는 실타래를 풀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계속 어딘가
불편했다.
내 스스로 편하지 않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그래.. 그러면 의미 없지.
스스로 쌓아가는 작업을 시작하자. 더 이상 소모적인 시간은
그만.
답답한 마음을 홀가분하게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겁고 힘겨운 씨름을 시작하게 되었다.
이게 풀리기 전까지, 내 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전까진
뭘 해도 즐겁지 않을걸 알기에

차라리 직면하는 게 속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린 시절부터 너무나 오래 꿈을 꾸어 왔던 꿈이라..
지금 와서 포기해버리면.. 그건 그 꿈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여겼기에,
계속 어딘가 막힌듯한 기분을 가지고 살아갈 것 같았기에.

한번 선생님으로의 나로 살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작게는 평생교육센터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3월부터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실타래를 푸는 작업을 시작하다


남모르게 간직한 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나 늙으면 무릎이 불편해서 4층 교실을 오르내리는 일이
힘들겠지만 머리 위 희끗희끗해진 반백의 머리가 눈부시리라
숱 많던 머리도 듬성듬성 빠져 버렸겠지만 필요 없는 정열을
버린 듯 차라리 홀가분하리라
익은 벼가 고개 숙이듯 어깨도 조금은 구부정하겠고 쭈글쭈글
주름은 졌어도 얼굴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리라
나를 보고 형님 형님 하던 후배들이 교장이 되고 교감이 되어
도 교실에 들어가는 일이 더 좋아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으리라
때로는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이 속 상해서 이 노옴들 하고
화를 내면 아이들은 찔끔하겠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안 무서운
그런 선생님이 되어 있으리라
늙어서도 나는 문학을 가르치는 일이 즐거워 김소월의 진달래꽃에
아이들보다 내가 더 감동하고 황순원의 소나기를 가르칠 때는
사춘기처럼 가슴이 뛰리라
맞춤법 표준말 바른 문장 가르치기에 열을 올리면서도 그보다
더 아이들에게 하늘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 부끄러움을 알고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잔소리에 시간을 더
보내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으리라

이슬이 새벽같이 꽃을 찾아오듯 누구보다 일찍 출근하고
저녁 노을이 마지막 빛까지 다 주고 가듯이 늦게까지 남아 더듬더듬
아이들의 작문을 읽고 있으리라
수업이 없을 때는 면 장갑 끼고 복도의 껌을 떼고 있거나
화단을 가꾸며 꽃 하나 하나에 아이들 이름을 붙여 주리라
민들레는 씩씩한 대한이, 냉이 꽃은 착한 민국이 개나리는
튼튼한 우리, 저기 진달래는 어여쁜 나라 젊은 후배들은
힘드실 텐데 쉬시라고 나를 걱정해도 파란 하늘 구름 한 번 보고
웃으며 나는 다시 흙을 만지리라
나의 지식과 인품 보잘 것 없지만 아이들에게 남김없이 베풀고
문득 사라질 조각구름처럼 두둥실 살아가리라
누군가 나에게 젊었을 때의 꿈을 묻는다면 옛날에도 지금도
아이들이 꿈이라고 말하리라
그러던 어느 날 교단을 물러나야 할 때가 되면 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퇴임식장에 앉아 있으리라
퇴임식 끝난 후에도 다음 시간 수업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교실로 향하는 발걸음이 허둥대리라
평생을 평교사로 몸바친 교단을 물러난 후 아이들이 나를
오래 잊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내가 아이들을 더 오래 잊지 못하리라

나 늙으면 정오의 태양처럼 많은 사람 위에 내리쬐기보다
사람들 가슴에 오래오래 머무는 저녁 노을이 되리라
어두울수록 수많은 별빛 반짝이는 밤하늘처럼 나 늙으면 아름다운
기억 속에 고요히 저물어 가리라

2002. 8. 25 行雲 씀

[희망의 문학] 사이트의 <나도 시인>
코너에 '행운'이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의 시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참 스승이란 무엇일까 생각하며
참사랑카페에서 옮겨왔다.


읽어 내려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다
언젠가 글을 써두었는데.. 맞아, 그랬었지. 나는 이런 꿈을 꾸었었지.


나이가 들며 다시 품은 새로운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건 30대가 되어 새롭게 생긴 꿈인데, 나의 꿈은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것이다.

20대 때도 참 많은 여행을 떠났지만 서른, 서른하나, 서른둘에
한참 많은 여행을 그것도 길게 떠났었다.
특히 2017년은 내 달력에 빼곡히 여행 일이 적혀 있을 정도로
갑자기 많이 떠났다.
혼자 떠나는 여행이었으니 만큼 싸고 안전한 공간을 찾아야
했으므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게 되었는데..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면 늘 조용한 소규모 공간을 찾았고,
홀로 여행하는 여행자들을 많이 만나며 다양한 이야기도 들었다.
편안함을 주는 자연, 좋은 사람, 그리고 따뜻한 공간들.. 조용히
여행하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되는 게스트하우스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 깊은 산속에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의
꿈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자연 속에서 휴식을 갖고 누구에게
도 방해 받지 않는 소규모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꿈이 생겨난 것이다.

누구든 이곳에 오면 감동받게 되는 공간, 편안함이 감동이 되는 집,
"참 잘 쉬었다 간다~!" 하고 감탄하게 되는 숙소 그런 게스트하우스를
깊은 산골짜기에 만드는 것이다.

이 공간에서 누구든 와서 편히 쉬다 가고, 밤에는 별 헤는 밤의
낭만을 선사해주고 싶다.
다이닝룸 한편에 공부방도 열어서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고,
작은 카페를 두어 사랑방을 만들고 싶다.
벌써 게스트하우스 이름도 지어뒀다. '별 헤는 밤' 게스트하우스.
'별 헤는 밤'이라는 주제로 시 공모전과 삼행시 짓기 등 크고
작은 이벤트들을 열 것이다.

단순히 게스트하우스가 아닌, 조용한 글쟁이들이 모여 창작의
공간, 문화공간으로까지 발전되길 바란다.


바꾸고 싶거나, 새로 만들고 싶은 습관은 무엇인가요?

내가 갖고 싶은 행동을 습관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갖고 싶다.

자기 전 10분 만이라도 꼭꼭 독서. 제일 중요!!
운동에 재미 붙이기.
하루에 정해진 시간에 날 위한 시간을 갖기. 그래서 뭐라도 끄적이기.
매일 꼭 몇 개씩은 새로운 것을 하기.

거창하지 않아도 이것만 습관으로 갖게 되면 내 삶은 더 좋은 쪽으로 변화될 것이다.

이 밖에도..
책을 많이 읽어서 사람들과 막힘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길.
주변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보길.
인내하는 연습을 하길.
그동안 나로 고생했을 가족들을 더 챙기길.
나에게 맞는 화장과 스타일을 찾으러 노력하길.
말을 조심하려 애쓰길.
남을 비방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좀 더 선한 마음을 갖길.
그때그때 사과하는 습관을 기르길.
계속해서 가치관을 재정비해
나가는 기연이가 되길 바란다.


내 인생의 좌우명은 무엇이었나요?

내 인생 좌우명은

'가슴 뛰는 삶, 가슴 뛰는 대로 살아보기'이다.

이유는..
나는 나를 치유하고 찾고 바로 서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다.
심리치료를 받기도 했고, EFT라는 기법을 공부하기도 했고,
전국 각지로 강연도 들으러 다녀보기도 했고, 교육학을 전공
하며 교육 심리, 청소년 상담, 학생상담, 등을 배우며 학문적
으로도 접근하며 공부하기도 했고 다양한 봉사활동은 물론
정신과 치료까지 받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를 포장하면서 또.. 솔직하지 못하면서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다ㅠ.)

어느 날 혼자 여행하면서 마음에서 불쑥 '나는 어떨 때 자유롭고
행복하지? 나답게 사는 게 뭐지?'라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주로 나는 가슴이 뛰어 행동했을 때
내가 가장 나답고, 자유롭고, 행복하고 그리고 후회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뒤로부터 나는 내 좌우명을 이걸로 정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지키고자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을 여러분들도 살아가다 한번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가 어떨 때 가슴이 뛰는지.
무엇을 했을 때 가슴이 뛰었는지..
내가 가슴 뛰는 순간을 발견했다면 그대로 행동하는 겁니다!



만약 선택을 해야 할 때 둘 중 하나를 두고 고민한다면
그래서 어떤 선택을 했을 때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뛰었다면
그걸 해보는 건 어때요?


"내 안의 나는 가슴으로 신호를 주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까요."


내 인생에서 이것만큼은 잘 해왔다고 자부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참 많이도 수많은 방황(?)과 도전을 했는데..
내 인생에서 이것만큼은 잘했다고 자부하는 것이 있다.
바로 '나 자신과 이제는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다양한 시도와 경험을 통해서, 그래도 세상에 믿을 사람은
나밖에 없고, 오직 나만이 나를 아껴줄 수 있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아서 그런 것 같다.
셀카를 찍고, 그 사진을 보면서 "오늘은 어땠니?" 간단하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혹시 불편했던 건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기도 하고..
그때그때 느낀 점들을 녹음해서 들어보기도 하고. 조금씩 장
점을 발견해가면서 나도 아주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네?
느껴보기도 했던 지난날들이었다.

그래서 감히 말할 수 있다.
내 인생에서 다른 건 다 모르겠지만, 그거 하나는 잘한 것 같다고.

'나 자신과의 대화.'

대학생이 되고부터 나 자신을 가장 아껴봤던 것 같다.
항상 건강에 유의해봤고, 마음이 다친 것이 있으면 그때그때
스스로를 보듬어 주었다. 내가 즐거울 수 있는 환경에 계속
노출시켜도 봤다. 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연구
해보는 시간들이기도 했다.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아직.. 내가 원하는 그 홀로서기가 다 되지 않아서 자책하고
있지만..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계속 진행 중이니까, 너무 겁먹지 말자.

스무 살부터 그토록 카운트다운을 세면서 기다렸던 서른이 지나
어느덧 서른셋이 되었다.
불안해서 맞이하기 두려웠던 그 서른의 시간도.. 참 빨리 지나간 거 같다.
비록 내가 그리던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않지만.. 그건 지금
도 내 눈으로 확인하지 않는가? 누구나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
그러니까.. 지금을 살면 되는 거다, 지금을. 그렇게 뚜벅뚜벅
나무도 보고, 별도 보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렇게
걸어나갔으면 좋겠다. 이렇게 나의 속도로 계속 가다 보면
내가 중심이 되어, 세상을 살 수 있게 되겠지? 그렇게 되길 바란다.

멋진 30대를 살아갈 나에게..
나와 좀 더 친해졌으면 좋겠다. 나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걸
조금 더 알았으면 좋겠다.
자책하는 걸 줄이고, 자존감 깎아먹는 말을 줄이고.. 경험으로
하나하나 채우면서, 그렇게.. 나를 쌓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한 삼십 대가 되었다. 만으로 아무리 낮추고자 해도
낮춰지지 않는 내 나이가 참 신기하기만 하다.
참 다양한 삶으로 살아가고 있는 동갑내기들은 더 신기하고..
앞으로도 더 신기한 일들만 가득가득 해지겠지?
그래서 나이를 먹어 간다는 건 어쩌면.. 예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들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가 생각나는 곡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제주 여행할 때 이 노래를 참 많이 들었던 거 같다.
'적재별 보러 가자.'
개밥바라기 별 게스트하우스에서 게 하 사람들과 별 보며
막대 불꽃놀이하면서 들었고..
그 대정읍 바로 앞 바다에서 새벽까지 맥주를 마시며 ..
파도소리랑 함께 들었다.
2박 3일이나 있을 줄 몰랐던 우도 서빈 백사장에서도..
밤늦게까지 자전거 탔던 우도 등대에서도, 잠깐 모슬포항에 들러
혼자 빨강 등대를 봤을 때도 늘 이 노래는 내 귀에 꽂혀있었다.
그래서 어느덧 이 노래는 .. 나에게 제주의 노래로 기억되고 있다.

무엇이 이 노래를 반복하게 만들었을까..
다~~ 좋았다.
바이올린 소리와.. 가수의 목소리.. 공감되는 가사..
반복해서 들을 이면 들을수록 다른 것들이 들렸다.
멍 때리며 멜로디가 잘 들리게 되었다가, 멋진 풍경을 볼 때는
바이올린 선율에 집중했다가, 혼자 가만히 있으면 가사에
감정이입이 되었다.
'어디야 지금 뭐 해? 나랑 별 보러 가지 않을래? 너희 집
앞으로 잠깐 나올래. 가볍게 겉옷 걸치고 나오면 돼. 너무 멀리
가진 않을게 그렇지만 네 손을 꼭 잡을래. 멋진 별자리 이름
은 모르지만 나와 같이 가줄래 ' 이 부분에서는 내 안에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느낌도 좋았다. 때론 친구에게, 나에게,
다가올 인연에게 하는 말 같았다.

그야말로 한여름 밤의 꿈같았다.
이 노래에 내 여행의 장면을 얹혀서 꿈처럼 느끼게 했다.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순식간에 그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시간 여행을 한다.

이런 추억을 가진 나라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3앞날
10년 후의 나는 어떨까요? 어떤 일을 하며, 누구와 함께 있을까요?

10년 후의 나는..
베테랑 선생님, 프리랜서 작가로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고 있지 않을까?

살아가는 것에만 급급하여, 10년 후까진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막연히 10년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게 더욱 즐겁고,
가르침이 자연스러운 수업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10년 전 서른셋에 그래도 꿈을 찾아오길 잘했어 하면서 정신없이 살고 있길.
10년 후에는 무거운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그리고 재밌게 수업 잘한다는
평을 받는 선생님이 되길 간절히..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써온 습작들이 어느새 포트폴리오가 되어,
프리랜서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했으면 좋겠다. 여행잡지에 기고도
하며 짭짤한 수입도 올리고, 내 글이 필요하고 도전해볼 만하면
글 쓰며 돈 버는..
잘 나가는 프리랜서 작가가 되어 있길.
(기왕이면 라디오방송 작가이길 바라지만..)

또.. 이건 10년 후가 아닌 몇 년 뒤의 일인데.. 6개월~1년 동안
핀란드, 독일 등 유럽이나, 치안으로 안전한 선진국에서
살아보는 경험을 해봤길 바란다.
자상한 우리 아빠와 같은 남자와 결혼해 예쁜 가정을 꾸리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었으면 하는 것도 나의 소박한 바람이다.
우리 아빠가 내 이상형이므로 .. 10년 뒤엔 꼭 우리 아빠와
닮은 사람을 남편으로 맞이해서 재밌게 살고 있기를.

그리고 우리 가족들과 북적북적 한 동네에 함께 살고 있었으면 좋겠다.
별 탈 없이, 좋은 사람들과 건강하고 오래오래 평범하게 사는
게 10년 뒤의 내 모습이었으면 한다.


내년까지 꼭 이루고 싶은 것 3가지와 그 이유를 적어 보세요.

1. 선생님으로의 커리어 자리 잡기.
2. 프리랜서 작가로 자리 잡기.
3. 안정적인 커리어 갖기.
4. 지금의 건강 유지하기.
5.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 유지하면서 내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기.

그동안에 방황이 너무 길어서..
그전에 목표와 방향 설정조차 어려워했던 나였는데..
이제는 이 5가지가 내 머릿속에 너무도 선명하게 그려 있다.
그만큼 내가 철이 들고 목표의식이 뚜렷해졌다는 거겠지?
더불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위기감과 조급함도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관련 경험이나 경력이라면 뭐든 도전해 볼 생각이다.
실패했다면 교훈이고, 성공했다면 경험이라 여기면서 이 5가지가
책에 쓰이는 만큼 책임감 있게 이루어야겠다.

죽기 전에 꼭 배워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유는요?

이건 꼭 죽기 전까지는 아니고 30대와 40대에 걸쳐서 배우고 싶은 것인데..
핀란드어와 기타와 국악기를 배우고 싶다.
핀란드어는 핀란드에서 살고 싶어서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기 위함이고,
악기는.. 언젠가 여행을 가면 꼭 길거리에서 국악기나 기타로
버스킹 하고 싶어서다.
낯선 거리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나만의 작은 공연을 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간은 평생 웃음 지을 추억이 될 것이다.
또, 나의 꿈이 이루어질 '별 헤는 밤' 게스트하우스에서
소소하게 분위기를 띄우고, 여행자들과 소소한 파티를 열며
흥을 돋우고 싶다. 언젠가 이루어질 그날을 위해 여유가 생기면 꼭 배워봐야지~!


새로운 도시로 이사 간다면 어디로 가고 싶으세요? 왜 그 도시인가요?

새로운 도시로 이사 가야 한다면 핀란드의 '탐페레'라는
도시에서 딱 1년만 살아보고 싶다.
여행하면서 내가 핀란드에서 봤던 건 별게 아니었다.
그저 일과 삶의 균형이 있었던 것. 그리고 충분한 여유가 있었던 것.
그게 자꾸만 기억에 남는다.
저녁 6시면 모든 상점이 문을 닫고, 술집도 저녁까지로 아주
일부만 열려있다. 백야였던 그 기간에도 길에는 온통 인적이
드물었다. 다 어디로 갔나 했더니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보내고 있더라..
분주하고 바쁘게 보였던 수도 헬싱키와는 또 다른 느낌의
도시 탐페레. 이 평범한 일상이 그냥 내 머릿속에 콱 박혀버렸다.
어쩌면.. 내가 꿈꾸는 삶도 이런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왜냐하면.. 꽤나 부러웠기 때문에..
이제 불행을 멈추고 제거하는 것이 아닌,
열심히 행복에게 묻고, 고민하고, 연습하고.. 결과적으로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내가 끊임없이 핀란드라는 나라에 호기심을 갖는 이유가 되었다.

기연. 너는 어떤 삶을..그리고 있니?


자녀에게 이것만큼은 꼭 물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이유는 무엇인가요?

생뚱맞은 생각이지만.. 어쩌면 내가 쓴 글들이.. 남은 사람들에게
남겨둔 나의 습작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래서 만약 먼저 죽게 된다면 온라인 공간인 내 블로그와,
오래된 검은색 다이어리, 그리고 중학생 때부터 써온 일기장을
물려주고 싶다.
특히 블로그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이가 한 살 먹을 때마다,
기념일이 지날 때마다,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적어둔
나의 습작들을 오래오래 간직해줬으면 한다.
나는 내가 언제나 반짝였으면 좋겠고, 빛이 났으면 좋겠다.
찌질해 보이고, 못나 보여도.. 지나고 나서 보면.. 그것 또한
나의 빛을 내던 거였다.
그 모든 것을.. 나의 성장과정을 잊지 않고.. 이렇게 기록해두었다.
이렇게 하나씩 쌓여서 2008년부터 지금까지의 내가 있네.


내가 언제까지 마음 담아 쓸지는 모르지만.. 먼저 떠난
조 기자님네 가족처럼.. 조 기자님이 쓴 글들을 보며 남은 가족들.
특히나 윤하가 커가며 위로 받을 수 있는 공간이자 추모의
공간이 되었듯이, 나도 온라인 공간인 블로그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
'엄마 아빠. 나 이때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어요.' '선생
님 저 이때는 이렇게 지나왔어요.' '친구들아.. 너와의 사진
들을 잊지 않고 올려놨다~'
하는 죽음 후 두고두고 익혀질 나의 공간.

혹여 뜻이 있다면 책으로 발행해서 소중한 사람들만 갖고
있길 바라요. 나 언제 세상을 떠날지는 모르지만..
미리 써두는 나의 유언이에요.
그냥.. 내가 위안 받고, 내 생각을 다지고, 내 마음을 풀어놓는
이곳이 그런 용도로도 쓰이길 바라서.. 사람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미리 생각나서 쓴다.

나를 오래오래 잊지 말고 기억해줘요. 나 당신들을 너무나
사랑했어요. 비록 이룬 것 하나 없는 삶이었지만.. 나를 사랑
해보고자 노력했었어요. 그동안 애 많이 썼으니까..
이젠 쉬어도 되죠? 나 떠난다고 너무 아파하지 말아요.
당신이 아프 면 나도 아파요. 당신이 울면 나도 슬퍼요.
그니까.. 나 따라오지 말고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훗날.
블로그를 통해 나의 제자, 나의 부모님, 나의 친구들이..
기연이는 그 순간순간마다 이렇게 살아왔구나 하고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하... 빨리.. 이런 글을 미리 써둘 수 있다니
그래도 언젠가 써야 했기에 썼다. 느낌이 이상하네.
새삼 특히 엄마한테 속 썩이기만 한 딸이라 미안하고 사랑했어요 엄마.
나 잊지 말고 오래오래 기억되는 사람이길.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요?

참 많은 걸 하고 싶은데.. 그 중의 하나는..
나는 누군가에게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한 위로 받는 사람이 되고 싶고..

마음이 힘들어서 그런지, 나를 토닥이는 노하우가
조금은 생겨난 거 같다.
내가 어떨 때 힘든 지, 힘들면 어떻게 푸는지, 어떻게 해야
스트레스를 풀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외로움을 견딜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나를 마주 볼 수 있는지..
그래서 이만~큼이나 보통은 된 거 같다. 보통이 되기까지,
마음이 평범해지기까지가 너무나 힘들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내 스스로는 아직 잘 와 닿지는
않지만.. 곧 올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면..
나의 경험이 아주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머지않아.. 꼭.. 나는 사람들에게 위로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나이가 들어가며 또 새로운 관점이 생기는 것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무덤덤 해지는 것.
느끼는 대로 다 표현하는 것이 아닌, 묻어둬야 하는 것도 있다는 것.
그래서 자주 속으로 삼키는 날들이 많아지는 거 같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다 표현하고 살기엔.. 각자의 삶도
너무 바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감성적이라는 말을 듣기 싫다. 이상적이라는 말도 듣기 싫다.
꿈속에 사는 것 같다는 말도 듣기 싫다.
차갑다는 말을 듣고 싶다.
이성적이고 냉정하고 현실적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더 듣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가까운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됐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한 살 한 살.. 내 나이의 숫자가 늘어 간다는 것..
단순히 그 시간들이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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